한국소비자원에 이어 OECD가 ‘국내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자료를 내놓자 이동전화 사업자들 움직임이 바빠졌습니다. 이통사들 득달같은 대응이 불만 가득한 이용자들 요금 인식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이른바 ‘물타기’란 지적입니다.
가입자 경쟁에서야 보조금을 양껏 질러대며 사투를 불사하는 이통사들이지만, 유독 ‘비싸다’는 요금공방에서는 지나치리만치 대동단결합니다. ‘실질 요금의 인하’ ‘차세대 통신망 투자여력 비축’ 등 내놓는 반박도 대동소이합니다. ‘비싸 보이지만, 비싸지 않다’, 뭐 이런 논리입니다.
지난 20일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가 주관이 돼 마련한 ‘이동통신 요금현황 및 향후 정책방안’이란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이어 OECD 발표자료에 대한 입장 다른 이들의 논박이 거센 가운데 열려 관심도 많았습니다. 균형 잡힌 토론만 보장된다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겠구나, 적어도 이런 생각을 모두 했을 것입니다.
예민한 때, 이날 세미나 의견을 수렴해 향후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신용섭 방통위 통신정책국장의 개회사가 있었습니다. “요금 개선의 필요성은 인식한다. 이용자 부담 부분을 감안, 지속적인 요금인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신 국장의 말입니다. 방통위 향후 요금정책에 있어 자세 변화를 예고한 것 아닌가, 추론케 했던 발언이었습니다.
이날 세미나 ‘방담’은 그러나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일방적 주장만 난무했고, 구색 갖추기 위한 소비자 대표 발언은 공허했습니다. 세미나 직후 ‘짜고 치는 고스톱’ ‘눈 가리고 아웅’이란 평가가 튀어나왔습니다.
먼저 주제발표에 나선 네 사람의 발언록입니다. “OECD 요금비교 지표가 국가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이내찬 교수, 한성대, OECD 정보통신정책 분과위원회(CISP) 부의장). “소비자가 느끼는 휴대폰 효용가치는 월평균 (인지)요금 5만 1852원보다 많은 8만 1418원이다”(김혜옥 이사, 한국리서치), “2008년 가구당 월평균 4592원의 이동전화 요금인하 효과를 봤다”(김민철 박사, KISDI), “OECD 요금수준이 높게 나온 것은 요금감면•할인상품 등이 제외됐기 때문이다.”(전성배 과장, 방통위)
토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박민수 교수(중앙대)는 “이통사 이익 많다면 왜 신규사업자가 등장하지 않느냐”고 반문했고, 이통 3사 토론자들 주장이야 이미 못이 박힌 논리의 재연이었습니다. “전문가 아니라 드릴 말 없다”는 이성협 변호사(김앤장)를 제외하면, 윤명 부장(소비자시민모임) 혼자 고군분투하는 형국이었습니다. 눈 하나인 곳에서는 둘이 ‘병신’이라고 하던가요? 서툰 용기가 다소 안쓰러웠습니다.
덕분에 이날 세미나는 줄곧 시들했습니다. 당초 기대했던 열기는 불꽃도 피우지 못하고 주거니 받거니 담론 속에 소멸했습니다. 모두 이통사 옳다는데, 참여자들 대부분 ‘소비자’에겐 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의 주장이라고 모두 틀렸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발표자나 토론자 모두 현상에 대한 객관을 토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또 다른 일방이 배제됐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통업체 변명기회만 준 요금세미나’(연합뉴스)라고 힐책 당해도 할 말 없게끔 그랬습니다.
‘이번 세미나가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우리나라의 이동전화요금 수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이동통신의 편익증진과 요금부담 완화를 위한 활발한 토론과 의견수렴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미나 전 방통위가 뿌린 보도자료의 일부입니다.
과연 그랬습니까?
덧말: 전성배 과장님께 묻습니다. “요금인하 여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차세대 통신설비 확충을 위해 힘을 비축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인하여력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때론 양비론兩非論만큼 양시론兩是論이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